400년전 북부 이태리를 덮친 역병의 단면들

코로나에 앞선 made in china 로 의심받고 있는 흑사병은 14세기 이래 심심하면 주기적으로 유럽을 털어왔는데  

지금도 코로나로 털리고 있는 북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소도시 프라토의 보건 책임자가 

1630년의 대유행때 남긴 세밀한 기록은 

그해의 끔찍했던 흑사병 창궐과 관련된 사회상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중세나 지금이나 여전히 방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식과 기술 측면이 아닌 

부족한 자원과 관료주의, 정치의 문제라는 걸 실감케 하는데..



1. 예방과 검역 조치 

프라토의 도시 위원들은 흑사병의 대책에서 기도와 향유의 효력은 별로 신용하지 않는 현명한 자들이었고 

밀라노에서 흑사병이 창궐한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도시 외곽에 삼중의 경계선을 치고 순찰을 강화한다. 

이렇게 재앙을 피하는 길은 오직 철저한 검역과 차단 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인력과 예산의 부족 등 현실의 문제는 

일선에서는 항상 발을 잡기 마련이었다. 

또한 한때 번창했으나 저물어가던 모직물 산업에 이러한 조치는 엄청난 치명타였고  

불법 통행으로 적발된 자들의 벌금으로 병원 운영비를 충당했다는 기록을 보면 차단조치는 완벽하진 못했던것 같다.   

당시에는 알수 없었으나 쥐와 같은 중간숙주가 흑사병의 전파매개체로 중요하다는 것은 또한 불운한 요소였다


2. 확산과 전파 

결국 도시에 환자가 속출하자 도시 위원회는 의심자는 자택격리하고 발병자는 성안의 병원에 수용한다. 

자택격리에 들어간 가정에는 시에서 빵과 생활비를 지급하기로 한다. 

병원에 들어간 자가 흑사병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살아남고 회복되었다고 생각되는 자들은 22일간의 추가 격리기간을 거쳐 일상에 복귀할수 있었다. 

치료야 변변한것이 없었지만 고통을 덜기위해 임파선의 종기를 째고 고름을 배농할 외과의사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았다. 

위원회의 결정은 오늘의 기준에서도 합리적인 편이었지만 실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생활비를 지급받기 위해 의심자 행세를 하는 빈민들이 나타났고 시 재정은 곧 바닥났다 

병원에 식량과 침구 등 필수품이 잘 보급되지 않자 무단으로 탈출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병원에 배치된 첫번째 외과의사는 흑사병에 걸려 죽고 두번째 외과의사는 도망가 버리자 

이제 구할수 있는 외과 의사가 없어서 첫번째 의사의 아들을 데려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봉급은 병원에서 종부성사를 담당하던 신부보다 낮았다


인구가 밀집하고 통제가 이뤄지기 힘든 성내부에 격리병원을 유지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인것을 도시 위원회는 곧 파악했고

대안으로서 외곽에 새로운 병원을 물색해야만 했다.

유력자의 저택이나 수도원이 물망에 올랐으나 각 수도회의 교단과 유력자들은 자기네 재산이 징발되는 것을 

피하고자 자치도시에 압력을 가할수 있는 피렌체 대공에게 온갖 로비를 시도했다. 

다행히도 피렌체도 흑사병으로 정신이 없었으며 도시 집정관이 단호하게 ㅈ까!를 시전하는 덕분에 이전은 이뤄졌다 

병원의 수익에 더 집착하던 병원 총책임자를 파면하고 자선단체에 운영을 맡긴 것은 덤 


3. 진정과 해소

시당국의 노력과 계절적인 요인 어떤것이 더 주효했는지는 알수는 없지만 병이 창궐했던 

1630년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자 다행히 흑사병은 진정되기 시작한다. 

아직도 산발적으로 <원인미상>의 사망자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모든것이 지긋지긋했던 시민들은

축제와 감사기도회를 통해 흑사병의 종식을 선언하고 닫혀있던 성문을 개방한다.

역할이 없어진 격리 병원은 문을 닫고 침구들과 환자의 의복들은 - 너무 새것이라 아까운 것들은 제외하고 - 

전부 불태워졌고 모든것은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방역기간 고생한 담당자들에게는 위로금이 지급되었는데 끝까지 고생한 외과의사에게 지급된 액수는 

수술복 한벌 값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목숨을 건 대가로서는 너무 야박하다고 할지 모르나 당시의 의복은 대개 귀중품이었고 바닥난 시 재정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처사였다고 할것이다. 


그래서 결국 희생자가 몇명이었냐고? 

당시 프라토시 전역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한 인구는 1500명 이상으로 추측되나 정확히는 모른다. 

프라토시 성곽 안의 인구는 6000명, 성밖의 인구는 그 두배인 11000명이었으나 성밖에서 발생한

사망 환자의 숫자는 집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곽 안에서 살던 인구 25%가 흑사병으로 희생된 것은 확실한데 이는 당시 대유행때 도시 인구 2/3가

없어진 밀라노 등의 참상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다.


- 카를로 치폴라 저,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에서 참조함 -


지금은 프라토시에 대규모의 차이나 타운이 형성되어 있는데 

오히려 롬바르디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코로나 환자가 적은것을 보면 아이러니 하다


by Dementia Precox | 2020/03/26 11:13 | 잡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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